본 칼럼은 침산교회 역사관(chimsan.org/history)의 콘텐츠입니다.

*연재 기간:
2010.06.09. ~ 2017.11.21.

*칼럼 주소:
chimsan.org/김강석

"그들이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올바른 지식을 따른 것이 아니니라.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지 아니하였느니라.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시니라 ." (롬 10:2-4) "그러면 무엇을 말하느냐 말씀이 네게 가까워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다 하였으니 곧 우리가 전파하는 믿음의 말씀이라.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롬 10:8-10)   1. 오직 은혜   빨리 가는 것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올바른 방향으로 가는 것입니다. 열심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은 올바른 방향입니다. 방향이 잘못된 열심은 다 헛것입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제대로 알고 살아가야 합니다. 올바른 지식을 따르지 않는 열심, 즉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생각으로, 자기 의를 세우는 일에 열심을 내는 것, 이것이 인생 실패의 원인입니다.(2-3) 비판의 마음을 갖지 마십시오. 은혜와 감사가 잊는 순간부터 인간은 십자가를 내던져 버리고, 자기 의를 세우고 자기 의를 의지하게 되는 것입니다. 은혜뿐입니다. 우리에게는 은혜, 또 은혜 밖에 없습니다.   2. 은혜로 부르심을 입은 새로운 존재  지금까지 살아온 것 하나 하나가 하나님의 은혜 아닌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라”.(고전15:10) 그러므로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겠습니까.   “내가 지금 사람들의 마음을 기쁘게 하려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하나님의 마음을 기쁘게 해드리려 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사람의 환심을 사려고 하고 있습니까? 내가 아직도 사람의 환심을 사려고 하고 있다면, 나는 그리스도의 종이 아닙니다.” (갈1:10,표준새번역)   3. 우리에게 주신 능력의 말씀 주의 은혜를 힘입어 사는 사람에게는 예수 그리스도 그 이름의 권능, 그 진리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그 말씀이 네게 가까이 있다, 그 말씀을 네 입에 네 마음에 담았다고 했습니다.(8) 말씀이 힘이 있습니다. 믿음을 고백하는 말에는 실제적인 능력이 있습니다. 그 말씀을 우리 곁에, 우리 마음에, 우리 입에 담으셨습니다.(10)  믿음의 말씀 자체가 힘이 있습니다.  말씀이 들려짐에 감사하고, 믿음의 말씀이 이해됨에 감사하고, 말씀이 믿어짐에 감사하십시오.  
2017-11-11 | 김강석 | 조회: 362 | 추천: 1
우리가 육신에 있을 때에는 율법으로 말미암는 죄의 정욕이 우리 지체 중에 역사하여 우리로 사망을 위하여 열매를 맺게 하였더니, 이제는 우리가 얽매였던 것에 대하여 죽었으므로 율법에서 벗어났으니 이러므로 우리가 영의 새로운 것으로 섬길 것이요 율법 조문의 묵은 것으로 아니할지니라. 성령의 열매를 맺는 생활 허물과 죄로 죽을 수밖에 없었던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죄의 문제가 해결되고, 죽음의 문제가 해결되고, 마귀의 종에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우리가 이 놀라운 축복의 주인공들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의 의지와 힘과 경험으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을 위해 살려고 노력해 보지만, 금방 내 자존심과 욕심과 교만이 나타나고, 악함이 드러나서 실패하게 됩니다. 하나님을 위해 살고, 열매 맺으며 사는 방법을 본문 6절에서 이렇게 가르쳐 주십니다. "영의 새로운 것으로..."(6) 성령님은 우리를 새롭게 하십니다. 성령님을 사모하고, 환영하고, 기뻐하고, 초청하면 성령님께서 우리 안에 오셔서 만족하게 하시고, 온갖 좋은 선물들을 더해 주십니다. 율법보다 복음이 먼저입니다. 계명과 율법은 원래 하나님이 주신 것이요, 잘 지키면 생명에 이르게 하는 좋은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절대로 그 율법과 계명의 요구를 다 지키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그 계명이 내게 대하여 도리어 사망에 이르게 하는 것이 되었다고 선언했습니다.(7:14) 그러므로 율법이 먼저가 아니고 복음이 먼저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먼저 우리 안에 임하셔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이 임하셔서, 복음이 우리 안에 이루어져야, 기쁨이 생기고, 평화가 생깁니다. 그래야 율법의 요구를 지키고 이룰 수 있는 힘을 하나님이 주시는 것입니다.(8:3-4) 우리는 영의 새로운 것으로 살아가며, 영의 새로운 것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들입니다.(6) ‘율법의 열심’이 아니라 ‘복음의 소망’입니다. 영의 새로운 것이란 <율법의 열심>이 아니라, <복음의 소망>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고 이루신다는 믿음입니다.  죄와 사망으로 죽을 수밖에 없던 우리를 하나님이 부르셔서 의롭다 하시고, 씻기시고, 이제 화평을 누리며, 기쁨과 소망을 나누며 살아가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기쁨과 소망이 넘치시기를 바랍니다. 주께서 우리의 모든 마음의 소원을 들으시고 응답해 주십니다. 우리는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그 모습 그대로의 나를 받아주시고, 죄의 모습을 품은 우리 모습 있는 그대로를 사용하셔서 일하십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7:25) 우리의 모습이 어떠하든지 간에 하나님이 내 편이라는 사실을 믿음으로 고백하십시오.
2017-11-11 | 김강석 | 조회: 361 | 추천: 1
"다시는 자신을 위하여 살지 말고, 오직 그리스도를 위하여 살라!"(고전 5:15) 우리는 자신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위해 살아야 할 존재들입니다.  그리스도를 위해 산다는 것은, 모든 것을 그리스도의 마음과 그리스도의 눈으로 바라보며 살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눈으로 형제, 자매를 바라보십시오. 하나님은 우리가 완벽하기 때문에 사랑하신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롬5:8) 이것이 그리스도의 마음입니다. 죄인인 나를 끝까지 사랑하시고, 나를 위해 죽기까지 하심으로 그 사랑을 보여주셨습니다. 우리는 완벽하지 않습니다. 부족한 것 투성이입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나를 사랑해 주셨습니다.  나의 연약한 모습 그대로를 사랑해 주셨습니다. 우리는 연약하고 부족하지만, 하나님께 사랑스러운 존재입니다. 사탄은 정죄하는 자요, 하나님은 죄인을 사랑해주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의 눈, 하나님의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십시오. 본문 16절 말씀입니다. "우리가 이제부터는 어떤 사람도 육신을 따라 알지 아니하노라 비록 우리가 그리스도도 육신을 따라 알았으나 이제부터는 그같이 알지 아니하노라." (고전 5:16) 많은 사람들이 예수의 그리스도 되심을 올바로 이해하지 못하고 세상적인 방법으로 육체대로 알았습니다. 그러나, 성령의 은혜를 체험한 사람들은 더 이상 그리스도를 육체대로 알지 않고, 영적으로 바라볼 줄 알게 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독생자요, 인류의 구원자시며, 영원한 하나님의 능력이십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육체의 방법, 세상적 시각으로 이 세상을 바라보며 살아왔지만, 이제는 영적으로 바라보고 영적으로 생각하고, 영적으로 판단합니다. 하나님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하나님의 눈으로, 서로를 바라볼 줄 알아야 합니다.하나님의 눈으로 인생을 바라보고, 하나님의 눈으로 자신과 세상을 바라보십시오.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이제는 육체대로의 시각을 버리고, 영적으로 살고 영적으로 바라보는 새로운 피조물들입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고전 5:17) 이전 것은 지나갔습니다. 우리는 이미 지나간 것을 찾으면 안 됩니다. 지나간 죄악의 사람을 따라 살아가지 말아야 합니다. 죄도 지나갔고 심판도 지나갔습니다. 이제는 죽을 육신을 위해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위해 대신 죽어 주신 그리스도를 위해 살아가는 생명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러면 생명의 삶은 어떻게 사는 것입니까? 화목하게 하는 직책으로 사는 것입니다. 이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하나님과 화목하고, 사람들과 화목하고, 또 사람들 사이를 화목하게 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서 났으며 그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주셨으니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 그들의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느니라.” (고전 5:18-19) 복음을 전하는 일은 죄인들을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는 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처럼 죄인과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는 일, 즉 복음 전하는 일을 천사에게 맡기지 않으시고, 먼저 구원받은 우리에게 맡기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에게 그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우리에게 세상과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주셨습니다. 이 같은 사명을 가진 그리스도인의 특권에 대해 “우리가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사신이 되었다.”(고전 5:20)라고 했습니다. 사신이란 보내심을 받아서, 대신해서 일을 처리하는 사람입니다. 복음을 전하는 사람은 그리스도를 대신한 사신입니다. 얼마나 영광스러운 직분입니까? 그리스도의 사신된 우리들은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화목의 복음을 전하는 일을 해야 합니다. 먼저 하나님과 화목하라는 것입니다. 그 길만이 죄인들의 살길입니다.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간청하노니 너희는 하나님과 화목하라.”(20) 멸망에서 영생으로 옮겨진 삶의 모습은 하나님과 화목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가진 의나 우리가 가진 구원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얻어진 선물입니다. 이 선물을 우리가 잘 사용하는 길은 모든 사람들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는 일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과 화목된 모든 사람들과 화목하게 지내는 일입니다.  예수 잘 믿는 것은 서로 화목하게 지내는 것입니다.   우리의 직분은 화목하게 하는 직분입니다. 예수 잘 믿는 것의 핵심은 서로 화목하게 지내는 것입니다. 그게 아니면 아무 것도 아닙니다.  화목하지 못한다면, 훗날 우리가 주님의 심판대 앞에 설 때에 아무 것도 내놓을 것이 없을 것입니다.  
2017-10-19 | 김강석 | 조회: 309 | 추천: 1
  1. 세례   세례식과 성찬식을 거룩한 예식이라 해서 ‘성례전’이라고 부릅니다. 세례식은 그리스도와 함께 옛사람이 죽고,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에 참여한 새사람이 되었다는 것을 여러 증인 앞에 나타내 보이는 예식입니다. 세례는 말 그대로 '씻는 예식', 우리의 죄를 씻고 새롭게 된다는 뜻입니다. 세례를 받으므로 죄인의 몸은 죽고, 새로운 사람으로 완전히 거듭나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음을 온 교회에 선포하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으면서 세례를 받지 않는 것은 예수님의 명령을 거스르는 것이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믿는 자에게 세례를 주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2. 유아세례   유아세례는 구약의 규례에서 유래 되었는데,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난지 8일 만에 할레를 받도록 명령을 하셨습니다. 오늘날 교회에서 유아세례를 베푸는 것은 부모가 유아를 하나님의 자녀로 잘 지도할 것을 하나님 앞에서 서약하는 것이기 때문에, 교회가 허락을 하고 유아들에게 세례를 주는 것입니다.   3. 성찬식   예수님께서 잡히시기 전날 밤,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 음식을 잡수시면서, 떡과 잔을 나누어 주셨습니다. '먹으라, 이 떡은 내가 너희를 위하여 대신 죽으면서 찢어지는 내 살을 기념하는 것이다. 이 잔은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나의 피니라.’ 그리고 모일 때마다 성찬식을 행하여 주님을 기념하라고 하셨습니다. 초대교회에서는 성찬식이 설교보다 더 귀하고 의미 있는 순서였습니다. 성도들은 성찬에 참여함으로 십자가의 은혜를 덧입고, 하나님의 임재와 성령의 능력을 덧입으며 거룩한 교회의 일원이 된 것을 확인하는 것입니다. 성찬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생명의 능력이 새롭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찬식에 참여할 때에는 예전의 생활을 회개함과 생명을 주심에 감사하는 마음과 내게 주신 건강, 물질, 시간, 모든 것을 선하게 사용할 것을 결심하고 헌신을 다짐하는 마음으로 참여해야 합니다.
2017-10-19 | 김강석 | 조회: 1013 | 추천: 1
  같은 마음을 품으라. 빌립보 교회에 ‘유오디아’라는 분과 ‘순두게’라는 열심 있는 두 교인 사이에 다툼과 불화가 생겨났습니다. 교회를 위해 충성하는 두 성도의 불화는 교회 전체에 큰 악영향을 주는 심각한 걱정거리가 되었습니다.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면 좋을까요? 사도 바울은 누가 잘했다 잘못했다를 판단하지 않았습니다. 이 순간 정말 중요한 것은 천국시민이라는 것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두 사람 때문에 교회가 아프고 어지럽다면, 지금은 옳고 그름을 따지지 말고 무조건 서로 용납하고 서로 품어주며 같은 마음을 품어야 할 때입니다. 그것이 ‘신앙’입니다. “내가 유오디아를 권하고 순두게를 권하노니, 주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으라.”(2) 내가 손해를 보더라도 교회에 유익을 위해 양보하고 같은 마음을 품을 수 있어야 합니다. 섬김의 삶을 살려고 하면 때로는 손해 보는 일이나 억울한 일도 당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하나님께서 채우시고 회복시켜 주십니다.   여호와를 기뻐하는 것이 성도의 힘 어렵고 답답한 상황이 생기면 가장 중요한 진리를 잊어버릴 때가 많습니다. 하나님이 지금도 우리와 함께 하고 계시고 우리를 사랑하고 계신다는 사실입니다. 성도의 힘은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나님, <임마누엘>을 기억하는 데서 옵니다. “근심하지 말라.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니라.”(느 8:10) 하나님이 함께 하고 계심을 믿고 있는 사람은 그 안에 기쁨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반드시 선한 길로 인도하실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책임져 주십니다. 우리는 주님이 믿는 자에게 주겠다고 약속하신 새로운 삶이 있음을 믿습니다. 그래서 억울해도 참고, 손해가 나도 용서하는 것입니다. 영원한 천국의 상급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머지않아 곧 주님 앞에 서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며 살기도 바쁜 인생에 다투고 따지며 살아갈 시간이 없습니다. 넘어갈 것은 넘어가주고 덮어줄 것은 덮어줘야 좋은 관계가 되지, 하나하나 일일이 내 뜻에 맞게 뜯어 고치려고 하면 관계가 좋아질 수가 없습니다. 복음의 비밀을 아는 은혜로운 사람은 넉넉한 사람이고 관용의 사람입니다. 주님이 곧 오심을 기억하면서 넉넉한 관용의 마음으로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아무것도 염려하지 마십시오. 주님이 책임져 주십니다.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고 사모하는 형제들, 나의 기쁨이요 면류관인 사랑하는 자들아 이와 같이 주 안에 서라. 내가 유오디아를 권하고 순두게를 권하노니 주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으라.  또 참으로 나와 멍에를 같이한 네게 구하노니 복음에 나와 함께 힘쓰던 저 여인들을 돕고 또한 글레멘드와 그 외에 나의 동역자들을 도우라 그 이름들이 생명책에 있느니라.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주께서 가까우시니라.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빌 4:1-7)
2017-09-23 | 김강석 | 조회: 479 | 추천: 2
        세상의 가치관   세상 사람들은 으뜸이 되기를 원하고, 섬김 받기를 좋아하지만, 하나님 나라의 백성은 그와 정반대로 살아야 합니다. 성도들은 사랑의 종이 되어 섬기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제자들도 세상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 문제였습니다. “주님이 권세를 잡으시면, 우리를 주의 좌우편, 그 권세의 자리에 앉게 해 주십시오.” 그러나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도 알다시피 세상에서는 통치자들이 백성을 강제로 지배하고 높은 사람들이 백성을 권력으로 내리누른다. 그러나 너희는 그래서는 안 된다. 너희 사이에서 높은 사람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남을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하고 으뜸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종이 되어야 한다.”(25-27, 공동번역)      하나님 나라의 원리   성도들은 세상에 속하지 않고 천국에 속한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세상 가치관이 아니라, 천국 가치관을 따라 살아가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는 다른 사람과의 경쟁하는 곳이 아닙니다. 하나님 나라는 스스로 자기 자신을 낮추어서 섬기는 훈련을 하는 곳입니다.(28) 예수님처럼 낮은 곳에 있기를 좋아하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습니다.(빌 2:5-8) 우리도 예수님처럼 자신을 낮추고 비우면, 하나님께서 높여주십니다.(빌 2:9-11) 내가 스스로 높이려고 하면 낮아집니다. 그러나 내 스스로 자신을 비우고 낮추면 하나님이 높여주십니다.  그것이 하나님 나라의 원리입니다.(마 23:11-12)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하라.   섬김을 받고자 하는 마음을 품고 있으면, 자꾸만 불평이 생기고 원망이 생깁니다. 불평이 있고 원망이 있으면, 모두가 불행해집니다. 성도끼리 싸우고 다투면, 결국은 사단 마귀만 좋아합니다. 우리는 오직 예수님의 마음을 품어서, 섬김을 받고자 하는 욕심을 버리고 사랑의 종이 되어 섬기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형제들아......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하라.”(갈 5:15) 우리는 서로의 종이며, 주님의 종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참되게 섬기는 것은 오직 사랑으로 종노릇 할 때 가능합니다. 우리가 정말 교회를 위하는 길은 사랑으로 종노릇 하는 것입니다. 참된 성도의 삶은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하면, 우리 인생과 교회와 가정이 천국 같이 변화됩니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마 20:26-27)  
2017-09-16 | 김강석 | 조회: 494 | 추천: 3
  1. 심각한 상황 : 전쟁의 위협 지난 9월 3일, 북한이 6차 핵실험을 감행함으로써, 전 세계가 충격을 받고 한반도를 예의 주시하고 있습니다. 북한은 대륙간 탄도미사일에 장착할 수소탄 실험에 완전히 성공했다고 대대적으로 선전을 하고 있습니다. 이번에 북한이 실험한 수소폭탄의 위력은 2차 대전 시, 나가사키에 떨어진 핵폭탄의 4배 내지 5배나 되는 엄청난 위력입니다. 이것이 만약 서울에 떨어진다면, 이 폭탄 하나로 약 200만 명 이상이 사망할 수 있는 무서운 폭탄입니다. 북한은 이번에 실험에 성공한 것이 원자폭탄보다 수백 배 강력한 수소폭탄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북한의 말을 다 믿을 수는 없지만, 말만 들어도 섬뜩합니다. 북한 김정은이가 만에 하나라도 정신 나간 짓을 하면, 이 땅 어느 곳도 안전한 곳은 단 한 군데도 없습니다. 정말 심각한 것은 김정은이는 어쩌면 그럴 수도 있는, 예측불가능의 인물이라는 것입니다. 북한은 또 수소폭탄과 더불어, 전자기파 무기(EMP) 공격도 함께 하겠다고 엄포를 놓았습니다. 전자기파 무기 공격을 받게 되면, 강한 전기장을 형성해서, 통신시설들과 전력계통 기기들이 모두 파괴됩니다. 통신장치가 마비되면 사실상 미국이 자랑하는 무기들의 첨단전자기능은 거의 무용지물이 됩니다. 탱크나 전투기의 자동사격통제장치 등은 있으나 마나가 됩니다. 이 공격을 받으면 전자기기의 겉은 멀쩡한데, 전원장치와 케이블 등 핵심부품이 모두 망가져서 복구불능상태가 된다는 것입니다. 데이터까지 모조리 날아갑니다. 그래서 이 폭탄은 구석기시대로 되돌리는 폭탄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어떻게 보면 핵폭풍이나 보다 더 심각한 피해를 줄 수 있습니다. 전기를 사용하는 의료 기기, 교통수단(차, 기차, 배, 비행기), 공장 설비가 모두 고장납니다. 날아가던 비행기가 그대로 곤두박질치고 고속전철이 제어가 되지 않고, 또 자동차 내부의 전자회로가 엉망이 되어서, 자동차가 서로 부딪치는 등 2차 사고를 일으킬 수도 있습니다. 호주 총리(맬컴 턴불)는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날 위험이 어느 때보다 큰 상태라면서 지난 7일에 TV방송을 통해서, 유사시 한국 등 동북아시아 체류하고 있는 호주 시민의 피난 계획 수립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습니다. 일본의 아베 총리도 ‘북한의 핵실험으로 한반도 긴장이 고조됨에 따라 일본 정부가 한국에 거주 또는 체류 중인 일본인 6만 명의 대피 계획을 세우는 중’이라고 밝혔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아직 북한이 레드라인을 넘은 것은 아니다.’하고 밝혔지만, 미국 백악관의 관계자는 말하기를 ‘이미 북한은 레드존 안에 들어와 있다.“고 했습니다. 그만큼 지금 상황을 심각하게 보고 있다는 뜻입니다.   2. 이 땅에 다시는 전쟁의 비극이 일어나지 않도록 전 세계가 한반도를 주시하면서 전쟁의 위험을 걱정하고 있고, 위기는 점점 더 고조되고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대단히 심각한 상황에 있습니다. 이 사실을 분명하게 인지해야 합니다. 지금 정치인들끼리, 니가 옳으니, 내가 옳으니 서로 싸우고 있을 때가 아닙니다. 지금은 정말로 심각한 상황입니다. 이럴 때에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우리가 지금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지금까지 누가 우리나라를 지켜 왔습니까? 이 나라를 보호하고 지켜 여기까지 오게 하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신실한 신앙인들의 믿음의 기도와 눈물의 호소를 하나님이 들으셨고, 그 기도들이 이 나라를 지켜왔습니다. 지금은 우리가 깨어 기도해야 할 때입니다.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평화를 위해서, 그 어느 때보다도 우리가 정신을 차리고 깨어 기도해야 될 때입니다. 미국에서는 예방전쟁(preventive war)이니, 선제타격(preemptive strike)이니 방어 전쟁(defensive war)이니 하는 말들이 오가고 있습니다. ‘선제 타격’이란, 적의 공격이나 침공이 임박했다는 것을 발견하고, 적의 기선을 제압하기 위해 먼저 공격하는 것을 말합니다. ‘방어 전쟁’은 적국의 공격을 해올 때, 방어 차원에서 전쟁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예방전쟁’이라는 것을 정말 심각한 상황입니다. 예방전쟁은 선제 타격이나 방어 전쟁과는 개념이 완전히 다릅니다. 예방전쟁은 적국의 전력 약화시킬 목적으로, 적국에 선제공격을 가하는 것을 말합니다. 즉, 예방전쟁은 전쟁 발발이 임박하지 않은 상황에서도 미국이 북한에 먼저 공격을 시작하는 전쟁입니다. 미국 공화당 중진인 그레이엄 상원의원은 NBC방송 인터뷰에서 말하기를,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의 장거리 핵·미사일 개발을 내버려두느니 북한과 전쟁을 하겠다고 내 얼굴에 대고 말했다”고 전했습니다. 그레이엄 의원은 북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전쟁밖에 없다고 하면서, 대북 선제타격이 아니라 예방전쟁 필요하다고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습니다. 예방전쟁의 대표적인 사례가 미국이 테러와의 전쟁을 내세우면서 지난 2003년 3월 이라크를 침공한 이라크전입니다.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인 허버트 맥매스터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인적 재난 사태가 초래되는 군사 행동을 통해서라도, 북한이 미국 본토에 도달할 수 있는 핵무기를 확보하는 사태를 저지할 것이다.” 이 발언 역시 예방전쟁 가능성을 예고한 것입니다. 여러분 두렵지 않으십니까? 물론 아무리 상황이 악화되더라도, 우리가 무서워서 벌벌 떨 필요는 없습니다. 우리는 죽음이 두려워서 벌벌 떠는 그런 사람들이 아니라 천국의 소망을 가진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이 엄중한 상황을 분명하게 인식하고 거룩한 두려움을 가지고 하나님의 자비와 은혜가 임하시도록 깨어서 기도해야 합니다. 이 땅에 다시는 전쟁의 비극이 일어나서는 절대로, 절대로 안 됩니다. 우리는 기도의 용사들이요, 이 땅을 지키는 믿음의 파수꾼들입니다. 이 땅의 전쟁을 막고 평화를 지키는 것은 무기가 아닙니다. 우리의 기도입니다.   3. 여호와께서 회복시켜 주시기를 하나님께서는 한국교회가 울며 기도할 때마다 응답해 주셨습니다. 전쟁의 잿더미에서 ‘한강의 기적’을 꽃피우게 하셨고, 원조를 받는 나라에서, 불과 반세기 만에 베푸는 나라로 만들어 주셨습니다. 그런데, 지금 이 나라는 어디로 가고 있습니까. 이 심각한 위기 속에서도 사회 정치 지도자들은 저마다 은밀하게 숨겨놓은 욕심과 권력에 대한 욕심으로 서로 다투고 분쟁하며 그릇 행하고 있습니다. 소금과 빛이 돼야 할 교회에서 조차도 거룩한 분별력을 찾아보기가 어렵습니다. 기도하기를 잊어버린 영적인 위기가 사실은 더 큰 위기입니다. 이런 모습이 혹시 나의 모습은 아닌지 이 시간 말씀 앞에서 돌아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마음의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께서 나를 어떻게 보실지, 우리 교회와 성도들의 모습을 어떻게 보실지 심히 두렵습니다. 여호와께서 집을 세워주셔야 합니다. 정신을 차리고 깨어 기도합시다.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깨어 있음이 허사로다. (시 127:1)
2017-09-08 | 김강석 | 조회: 358 | 추천: 1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전하시고자 하셨던 내용의 핵심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하는 것입니다.(마 4:17, 막 1:15, 눅 4:43) 예수님이 일생동안 가장 중요하게 여기셨던 것은 천국, 즉 <하나님의 나라>였습니다.      하나님 나라(천국)의 의미   우리는 보통 <천국>을 죽어서 가는 곳으로 생각하지만, 예수님은 ‘천국이 우리에게로 온다’고 말씀하십니다. 천국은 우리가 나중에 들어갈 어떤 장소만이 아니라, 하나님이 통치하신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임하였을 때, 고통이 물러가고 귀신이 쫓겨나고 병이 고쳐졌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향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셨고, 사단의 세력이 물러가게 하시고, 하나님의 통치가 임하게 하셨습니다. 우리 안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시작된 하나님의 나라가 지금 우리에게까지 미치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지 모릅니다.      하나님의 통치   우리가 하나님의 통치에 순종하지 않고, 이 세상의 통치 이념에 따라 살아간다면,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서의 사명을 망각한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이익과 그 나라의 확장을 위해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우리를 부르시는 주님의 그 부르심 앞에 우리는 철저하게 순종해야 합니다. 부르심을 받은 제자들은 그동안 생계를 위한 삶을 접고 주님을 따랐습니다. 주님은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가 오게 하라고, 즉 하나님의 통치를 실현하라고 우리를 부르십니다. 사람을 낚는 어부로 살아가라고 하십니다. 우리는 더 이상, 무엇을 먹고 무엇을 마시며, 무엇을 입고 살아갈까 하는 생계만을 위한 염려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의 통치를 나타내며, 하나님의 의를 심을까 하는 고민을 하면서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는 이 땅에 하나님의 통치를 실현하기 위해, 하나님의 다스림을 펼치기 위해 부름을 받았습니다. 이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속한 그 모든 삶의 영역 안에서 하나님 나라를 실현하고 나타내어야 할 의무가 우리에게 있음을 명심해야 합니다. 이 사명을 따라 살아가야 합니다.   "이때부터 예수께서 비로소 전파하여 이르시되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하시더라. 갈릴리 해변에 다니시다가 두 형제 곧 베드로라 하는 시몬과 그의 형제 안드레가 바다에 그물 던지는 것을 보시니 그들은 어부라. 말씀하시되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 그들이 곧 그물을 버려두고 예수를 따르니라. 거기서 더 가시다가 다른 두 형제 곧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형제 요한이 그의 아버지 세베대와 함께 배에서 그물 깁는 것을 보시고 부르시니 그들이 곧 배와 아버지를 버려 두고 예수를 따르니라. 예수께서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사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백성 중의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 그의 소문이 온 수리아에 퍼진지라 사람들이 모든 앓는 자 곧 각종 병에 걸려서 고통당하는 자, 귀신 들린 자, 간질하는 자, 중풍병자들을 데려오니 그들을 고치시더라. 갈릴리와 데가볼리와 예루살렘과 유대와 요단 강 건너편에서 수많은 무리가 따르니라." (마 4:17-25)
2017-09-02 | 김강석 | 조회: 606 | 추천: 1
일제 강점기 당시에, 일본은 전국에 신사를 건립하면서, 신사참배를 강요했습니다. 신사참배 문제는 한국교회가 만난 최대의 위기 중의 하나였습니다. 일제는 신사참배가 종교적인 문제가 아니고 단지 국가에 대한 예식에 불과하다고 주장했지만, 그것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당시 동아일보는 신사참배가 단지 국가에 대한 예식에 불과하다는 일본의 주장을 반박했습니다. 하지만 일제의 검열과 통제 아래에서 신문 언론이 국민의 힘을 하나로 결집시키기에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일제의 신사참배 강요에 대항할 조직은 교회밖에 없었습니다. 장로교 총회는 일제의 신사참배 강요에 맞서서 1932년 총회에서 이런 결의를 했습니다. “기독교 학교 생도는 타종교식전(他宗敎式典)에 참열함을 불허(不許)한다.” 1935년 5월에 약 200여 명의 장로교 목사, 선교사들이 금강산에서 수양회로 모였습니다. 여기서 주기철 목사님은 설교시간에, 신사참배를 강요하는 일제의 횡포에 맞서야 한다고 외쳤습니다. 그러자 수양회를 감시하던 일제 경찰관이 설교 중에 ‘중지!’ 하고 외치면서 설교를 중단시키고 강제로 해산시켜 버렸습니다. 그때부터 주기철 목사님은 일제의 요주의 감시대상이 되었습니다. 같은 해 12월에 주기철 목사님은 평양신학교 사경회 강사로 초빙받아서, 다시 한 번 자신의 순교자의 결단을 담은 메시지를 선포했습니다. 설교의 제목은 <일사각오>였습니다.   “예수를 따라서 일사각오, 타인을 위한 일사각오, 부활진리를 위한 일사각오, 그것은 예수 안에서의 죽음이 진정한 생의 출발이며, 부활을 위한 입문입니다. 예수를 버리는 것은 죽는 길입니다. 예수를 따라 죽는 것이 정말 사는 길입니다. 죄인을 위해 죽기까지 피 흘리시고 자신의 생명을 주신 그 남을 위한 희생, 그것이 바로 이 시대 우리가 따라야 할 가르침입니다.”    결국 주기철 목사님은 평양 감옥에 투옥되었고, 주 목사님께 동조하는 여러 성도들도 같이 투옥되었습니다. 어느 날, 일본 순사들은 주목사의 의기를 꺾으려고 주목사와 성도들을 교도소 마당에 데리고 나왔습니다. “오늘 여러분 성도들이 신사참배를 하겠다고 하면 주목사가 더 이상 고문을 받지 않도록 해 주겠다.” 그 앞에는 널빤지에 못을 무수히 박아 놓고, 못 위를 걷는 고문이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여러분들이 계속 신사참배 반대를 고집한다면, 주기철 목사는 이 못 위로 걷는 고문을 당하게 될 것이다!” 그 때 주목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성도 여러분, 나 주기철을 생각하지 마십시오. 오직 주님의 십자가를 바라보면서, 오직 주님과 여러분이 함께 다짐한 것을 굳게 지키시기를 바랍니다.” 이 말을 마치고 주목사님은 자진해서 못이 무수히 박힌 널빤지 위로 올라갔습니다. 성도들은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주목사의 발자국마다 붉은 피가 흘렀습니다. 그 때 성도들은 찬양을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환란과 핍박 중에도 성도는 신앙 지켰네.”  "옥중에 매인 성도나 양심은 자유 얻었네. 우리도 고난당하면 죽어도 영광되도다. 성도의 신앙 따라서 죽도록 충성하겠네." 우리 한국 교회는 이런 순교적 복음의 전통 위에 굳건히 서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주님은 나를 위하여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주님은 최후의 피 한 방울까지도 다 쏟으셨습니다. 주님은 이렇게 나 위하여 죽으셨거늘 내 어찌 죽음을 무서워하리요. 나는 일사의 각오와 다짐이 있을 뿐입니다. 사랑하는 나의 교우 여러분, 그리스도의 사람은 살아도 그리스도인답게 살고 죽어도 그리스도인답게 죽어야 합니다. 죽음이 두려워서 예수를 버리지 맙시다. 풀의 꽃같이 시들어 떨어질 목숨을 아끼다가 지옥에 떨어질까 두렵습니다.  더럽게 무릎을 꿇고 사는 것보다 차라리 죽고 또 죽어 주님을 향한 각오와 다짐과 정절을 지켜나갑시다. 다만 나에게는 일사각오의 결의가 있을 뿐입니다. 소나무는 죽기 전에 찍어야 시퍼렇고 백합화도 시들기 전에 떨어져야 향기롭습니다. 이 몸도 시들기 전에 주님 제단에 드려지기를 바랄 뿐입니다." 1944년에 주기철 목사님은 평양 감옥에서 순교했습니다. 그때 나이 만47세였습니다. 주기철 목사님이 순교하시기 직전에 쓰신 <고난의 명상록>입니다. 주님을 위하여 오는 고난을 이제 내가 피하였다가 이 다음에 무슨 낯으로 주님을 대하리이까? 주님을 위하여 이제 내가 당하는 수욕을 피하였다가 이 다음에 주님이, 너는 내 영광과 평안과 즐거움을 다 받아 누리고 고난의 잔은 어찌하였느냐고 물으신다면 나는 어떤 말로 대답하리이까? 주님을 위하여 오는 십자가를 내가 피하였다가 이 다음에 주님이 너는 내가 준 유일한 유산인 십자가를 어찌하였느냐고 물으신다면 나는 무슨 말로 대답할 수 있으리이까?
2017-08-26 | 김강석 | 조회: 964 | 추천: 1